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티베트 불교 (문단 편집) === 밀교와 현교의 비교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Feature-Review_Tibetan-Medical-Paintings_AbramsNY.jpg]]}}} || || 티베트 전통 의학에서의 인체 맥륜(脈輪)도. 밀교에서는 신구의(身口意) 삼밀(三密)의 수행으로 현생(現生)에서 지금의 몸으로 부처가 되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 가능하다고 본다. || 겔룩의 창시자인 쫑카빠는 '''"공성에 대한 견해, 모든 유정의 존재들을 위해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발심하는 의도(보리심), 육바라밀의 수행에 있어 바라밀승과 금강승 양자는 차이가 없다."''' 하고 말하였다. 바라밀승과 금강승은 공성(空性)이라는 견해를 지향하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금강승에서 말하는 공성이라는 것도 결국 바라밀승에서 말하는 공성을 말하는 것이지 더 심오한 공성을 말한다거나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히 겔룩, 사캬의 경우가 그렇다.] 바라밀승과 금강승의 공통된 수행도는 곧 보리심이다. 진정한 보리심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을 때 비로소 금강승에 입문할 수 있다. 보리심을 갖춰야 금강승에 박학다식하고 금강승의 수행을 겸비한 자격을 갖춘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금강승의 가르침을 수행할 수 있다. 바라밀승과 금강승 사이에 의도/동기인 보리심과 행위인 육바라밀에 있어서는 차이가 전혀 없다. 또한 바라밀승에서 말하는 부처의 과위와 금강승에서 말하는 부처의 과위는 차이가 없다.[[http://kidkoala.cafe24.com/BuddhistSutraCoursesandPublications/760|#]] '''그러나 부처의 과위에 이르기 위한 방편에 있어서는 바라밀승과 금강승의 차이가 있다.''' 부처님의 과위, 불과(佛果)라는 것은 법신(法身)과 색신(色身) 두 가지로 양상을 나눌 수 있다. 바라밀승과 금강승 모두 법신을 이루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지만, 색신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은 금강승에만 드러나 있으며 법신을 이루는 방법에 있어서도 바라밀승보다 금강승이 더욱 구체적이다. 전반적으로 금강승은 바라밀승에 비해 보다 지혜롭고 예리한 근기의 수행자만이 수행할 수 있고, 더욱 다양한 방편으로 쉽고 빠르게 성불할 수 있는 가르침이다. 금강승이 바라밀승보다 우월한 점에 대해 제13대 달라이 라마 툽텐 갸초(Thub Bstan Rgya Mtsho)는 다음과 같은 4가지를 언급했다. (a) 금강승에서 공성의 체험을 일으키는 방식은 비할 데 없는 방편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방편들은 신체의 거칠고 미세한 생명의 바람(風)들을 중맥(中脈)에 넣고, 머물게 하고, 녹임으로써 심원리(心遠離, Skt. cittavyavakarṣa, Tib. sems dben pa)의 지혜를 얻게 한다. 따라서 금강승에서 공성에 대한 통찰을 기르는 방편들은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b) 금강승은 보다 광대한 방편들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금강승의 수행 중에는 성취해야 할 색신(色身)의 특성에 따라서 원인이 되는 형색(形色)을 명상하는 것이 있다. (c) 금강승의 도(道)는 어려움 없이 속히 성취된다. 반야바라밀승에서는 깨달음의 과위를 얻기 위해 수많은 생(生) 동안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반면 금강승에서는 지금 한 생 안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쉽게 성취할 수 있다. (d) 마지막으로 금강승은 도(道)의 빠른 진전을 이룰 수 있는 예리한 근기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고안되었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g7xvDwAAQBAJ&lpg=PP1&dq=from%20the%20heart%20of%20chenrezig&hl=ko&pg=PP1#v=onepage&q=from%20the%20heart%20of%20chenrezig&f=false|Glenn H. Mullin, 《From the Heart of Chenrezig: The Dalai Lamas on Tantra》]] 바라밀승과 달리 금강승에는 지혜와 방편을 완벽히 합일하여 수행하는 법이 있다.[* 바라밀승은 지혜와 방편을 합일하는 법에 대해 "지혜는 보시 등 이전에 행했던 힘의 영향을 받고, 방편은 공(空)에 대한 명상을 했던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바라밀승의 수행자들은 마음이 공성과 계합한 연후에 ‘모든 법이 공하다’는 관조력을 잃지 않고 보시, 지계, 인욕을 닦아야 하며, 동시에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보리심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공성을 관(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라밀승에서 말하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이다. 그러나 금강승의 관점에서 볼 때 바라밀승에서 말하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은 완벽한 합일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독립된 두 의식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금강승에서는 단일한 의식으로써 공성을 인식함과 동시에 방편인 대락(大樂)을 함께 누리는 낙공불이(樂空不二)가 가능하다.] 바라밀승의 수행자가 공(空)에 대한 개념적 또는 추론적 인식을 얻게 되면 오직 공만이 나타나고 대상은 사라진다. 그러나 본존요가는 공성에 대한 명상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본존으로, 자신의 주변 환경을 본존의 거주지로(만다라), 자신의 도반들을 신성한 존재들로, 자신의 행동들이 본존의 신성한 행동으로 심상화(心象化)함으로써 금강승의 수행자가 공을 깨닫게 되면, 관(觀)하던 현상이 공하다는 지각이 일어남과 함께 그 현상들이 사라지지 않고 공성의 범주 내에서 유지된다. 그러므로 지혜와 방편이 동시에 존재하고 공을 깨닫기 위해 사용된 미묘(微妙) 의식은 붓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한 금강승에는 본존의 관상 뿐 아니라 신체 구성요소인 기(氣, prāṇa), 기맥(氣脈, nāḍi), 맥륜(脈輪, cakra), 명점(明點, bindu) 등을 활용한 수행법이 있다. 금강승에서는 불과(佛果)를 이루는데 매개체가 되는 수행자의 신체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무상요가 딴뜨라에 의하면 수행자의 몸과 마음은 일상생활의 거친 수준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미세한 수준으로도 존재한다. 다양한 물질요소로 이루어진 수행자의 일상적인 신체적 형태는 병과 쇠퇴와 죽음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금강신(金剛身)이라 불리는 미세한 몸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파괴 불가능한 성질을 갖고 있다. 소멸되는 물질적인 거친 수행자의 몸이 일반적인 신체기관에 의해 채워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세한 금강신의 몸은 기(氣)와 명점(明點)이 흐르는 수천 개의 기맥(氣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기맥들은 지복(至福)의 원천이며 무상요가 탄트라의 수행에 있어서는 필수적이다. 딴뜨라 수행의 목적은 미세신(微細身)의 구성요소를 정화하여 붓다의 세 가지 몸(法身, 報身, 化身)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삼는 데에 있다. [[https://osel.tistory.com/257|원명, 《탄트라 수행의 특징: 신체 구성요소의 활용》]]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